• 이터널클래시 "개발 3년에 빚까지…믿어준 직원들 뿌듯"

    2016-01-05

[출처] 한국경제 / 서동민 기자 / 2016-01-05









(왼쪽 박민철 이사, 오른쪽 김세권 대표) 


신년벽두부터 갓게임, 혜자게임으로 칭송받는 게임이 등장했다. 벌키트리가 개발하고 네시삼십삼분(4:33)이 서비스하는 전략디펜스RPG '이터널클래시' 이야기다. '갓(God)'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임은 완성도와 재미를 모두 갖춘 게임을 말하며, 혜자게임은 결제를 많이 하지 않아도 풍성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게임을 뜻한다. 유저들의 호평 없이는 불가능한 명칭이니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매출 1등 게임'보다도 더 큰 찬사다. 

그렇다고 매출 지표가 턱없이 낮은 것도 아니다. '이터널클래시'는 12월 31일 정식 출시해 1월 4일 기준 구글 플레이 인기순위 2위, 매출순위 49위에 안착했다. '흥행돌풍'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액션RPG 일색인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의미있는 성과다.  

 

 

년간의 산고 끝에 건강한 게임을 출산한 기분은 어떨까. 2016년의 첫 주, '이터널클래시' 론칭 후폭풍으로 정신없이 바쁜 벌키트리에서 김세권 대표, 박민철 이사를 만났다.  

 

 



빚내서 월급 줬다, 게임에 자신 있으니까 

2000년, 한창 벤처 붐이 불던 시기였다. 서울로 상경해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경상도 사나이 김 대표의 겨울은 유독 춥고 힘들었다. 첫 직장에서 갑자기 월급을 줄 돈이 없다고 했다. 미리 귀띔이라도 줬으면 대비라도 했을텐데, 곪아서 터질 때까지 직원들에게 숨긴 것. 너무 화가 났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부지런히 이력서를 돌리며 갈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다른 곳도 매한가지였다. 옮기는 곳마다 월급이 밀렸다.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으며, 김 대표는 결심했다. 언젠가 월급을 주는 입장이 되면, 돈이 바닥나서 월급을 못주게 되기 전에 반드시 직원들에게 사실을 알리겠다고. 그것이 대표가 직원들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15년 후, 예감은 현실이 됐다. 스타트업이면 으레 그렇듯, 김 대표의 벌키트리에도 몇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특히 2014년 12월 크리스마스 때는 정말 심각한 위기였다. 결국 마지막 월급 날 직원들을 모아 놓고 "다음 달부터는 월급 줄 돈이 없다"고 털어놨다. 대신 지금 투자사와 이야기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한 회사의 대표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창피했지만, 혼자 끙끙 앓다가 한번에 터지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었다. 김 대표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직원들은 단 한 명도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미친거다. 뭘 믿고 안나간건지(웃음). 그래도 그렇게 믿어 준 직원들이 고맙다."

월급을 주기 위해 김 대표는 개인대출을 끌어쓰고 담보까지 잡혔다. 애들 월급은 줘야하지 않겠냐며 염치불구 다른 임원들에게 돈을 빌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극한까지 내몰리면서도 김 대표가 회사를 지킨 이유는 게임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사인 코오롱 인베스트먼트와 네시삼십삼분도 게임의 완성도를 믿고 지지해줬다. 

그렇게 3년의 우여곡절 끝에 '이터널클래시'가 탄생했다. 김 대표는 직원들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매체와의 인터뷰마다 굳이 직원들을 모두 불러 함께 사진을 찍는다. 비록 이 날은 직원 상당수가 전날 야근으로 인해 촬영에 불참하긴 했지만 말이다. 

 

  



전략성이냐, 결제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김 대표와 박 이사를 비롯해, 벌키트리 임직원 과반수는 엔씨소프트 출신이다. 사실 엔씨소프트 출신이 주축이 되어 세운 스타트업이 보기 드문 것은 아니다. 그러나 RPG가 아닌 디펜스게임은 드물다. 다른 엔씨소프트 출신들은 대부분 액션RPG 또는 MMORPG를 만들었거나 만들고 있다. 엔씨소프트에서 MMORPG를 만들며 쌓은 노하우를 최대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식상한 질문이지만, 왜 디펜스게임을 택했냐고 물었다. 답변은 의외로 솔직했다. 3년 전에는 미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단다. RPG라고 하면 묵직한 MMORPG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고정관념은 '블레이드'의 성공으로 깨졌다고. 대신 디펜스게임은 저사양 모바일 디바이스에서도 잘 구동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터널클래시'는 정통 디펜스게임은 아니다. 디펜스게임에 RPG 요소를 녹여넣은 퓨전게임이다. 기본적으로 영웅을 생산해 적진을 무너트리는 디펜스게임이지만, 영웅을 획득하고, 영웅의 등급을 올리고, 장비를 강화하는 RPG 요소를 갖췄다. 요새 대세인 영웅수집형 RPG와 매우 흡사하다. 엔씨소프트 출신의 DNA는 그렇게 게임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디펜스게임과 RPG를 합치다보니, 전략과 덱 파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됐다. 순수한 두뇌 싸움으로 클리어하게 만들 것이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강해지는 소위 '결제력'으로 클리어하게 만들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것. 전자를 강조하면 지나치게 마니악한 게임이 되고, 후자를 강조하면 디펜스게임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딜레마다. 

박 이사는 "어느 하나에 치우치면 깨져버린다"며 "명확한 기준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략이 필요한 스테이지가 있고, 덱 파워가 필요한 스테이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예를 들어 6챕터에 등장하는 라바 비홀더의 경우 드래곤로그의 전략적인 활용이 빛을 발하는 구간"이라며 "결제력으로 무장한 4성덱이 아니면 클리어하지 못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뇌 회전이 더딘 유저들을 위해 덱 파워를 올리면 어떻게든 클리어는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이터널클래시' 안해 본 눈 삽니다 

현재 '이터널클래시'에서 공개된 스테이지는 6챕터까지다. 그런데 지난 연휴 기간동안 5챕터까지 진행한 유저들이 많다. 무서운 콘텐츠 소모 속도다. 콘텐츠 소모를 늦추기 위한 대비책은 있을까. 

박 이사는 "유저의 콘텐츠 소모 속도를 인위적으로 막는다는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스테이지의 난이도를 무지막지하게 올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대신 다양한 즐길거리를 추가로 만들어 넣기로 했다. 이를테면 월드보스를 잡을 때 누가 더 빠른 시간에 높은 점수를 낼 수 있는지를 경쟁을 시키는 식이다. 경쟁 요소만 있으면 재미 없으니 길드 관련 협력 콘텐츠도 보강할 예정이다. 박 이사는 "기획은 완성됐고, 구체적인 콘텐츠를 차근차근 개발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터널클래시를 RPG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캐주얼하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하드코어하게 즐긴다는 이야기다. 소모성 자원인 '고기'를 매일같이 퍼주고 스테이지 패배시 '고기'를 돌려주는데도 '고기' 없다는 원성이 자자하단다. 

새벽에 아프리카TV에서 '이터널클래시' 방송을 보면 그 야심한 시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긴다고 했다. 방송을 하는 BJ가 "이거 MMORPG 아니니 쉬엄쉬엄 해라, 다들 미친 것 같다"고 할 정도다. 김 대표는 "다 게임이 재미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며 웃었다. 

개인적으로 아직 게임을 많이 해보지 못했다고 했더니 "부럽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앞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많이 남아 있으니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이터널클래시' 안해 본 눈을 살 기세다. 김 대표의 게임에 대한 자신감은 그만큼 높았다. 그는 "창업할 때부터 글로벌 1위가 목표였다"며 "재수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왕 시작한 것 그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냐"며 농담을 던졌다. 이미 현수막까지 만들어놨다고 했다.  

 

 


악랄한 결제 유도 없을 것, 멀리 본다 

'이터널클래시'에 대한 유저들의 평가는 매우 좋은 편이다.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결제 유도가 비교적 낮은 것도 한 몫 한다. 게임이 인기 궤도에 오르면 욕심이 날 법도 한데, CBT에 있던 비즈니스모델(BM)을 빼버릴 정도로 오히려 문턱을 낮췄다.

김 대표는 "유저층을 두텁게 하려면 BM이 악랄하면 안된다"며 "우리 게임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게임 하나로 '짱먹겠다'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그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저 피드백 중 강화 확률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 오해를 풀고 싶다고 전했다. 박 이사는 "어떤 유저는 계속 성공하고, 어떤 유저는 계속 실패하다보니 사기친다고 느낄 수 있다"며 "그러나 확률은 정말 공개된 그대로 순수하게 적용되니 믿어달라"고 말했다. 대신 유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향후 강화 확률을 중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추가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슬롯에 50%를 2개 넣으면 100%가 되는 식이다. 50% 확률을 2번 시도하느냐, 100% 확률을 1번 시도하느냐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게임 론칭 후의 소감을 물었다. 무엇보다 유저들이 "게임에 깊이가 있다"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BM도 이정도면 착하다" 등의 좋은 이야기를 해줘서 기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의도했던 부분을 알아줘서 기분이 너무 좋다"며 "앞으로도 누구나 오래 즐길 가치가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